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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book

(책) 괜찮아, 과학이야 - 임소정

by 르미르미 2023. 1. 26.


포항공대에서 식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일하고 계신 임소정님의 에세이 이름만 대면 아는 학교에서 박사까지 한 작가님은 박사 과정을 끝내느라 고군분투했고 졸업할 날만 기다리며 살았다. 자신이 연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좌절했고, 마지막 결과도 좋지 않아서 (낮은 임팩트 팩터를 가진 저널에 논문을 내고 겨우 졸업) 자신이 실험실의 유능한 다른 박사님들과는 다른 돌연변이라고 생각하며 속상해 했다. 오랫동안 연구했던 분야를 떠나 연구를 하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았다. 보람을 느끼고 일하고 있지만 너는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마음졸여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이상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작가님은 과학은 통해 삶의 방향성을 찾았고 힘과 위안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려고 한다. 대학원생으로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너무 재미있었고,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내가 하고 있는 연구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연구들이 완전하지 않지만 과거의 불완전한 연구가 또 다른 연구의 발판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나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좀 바뀌었다. 용기가 생겼다. 단순히 아는 것과 달리 마음으로 느끼니 나의 불완전한 연구가 벌써 좀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불완전한 연구를 하는 것이 과학자라면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연구가 계속 하고 싶어 질 것 같기도 하다.


“여기엔 연구 성과 대신 감정의 생채기가 있고, 경이로운 발견 대신 한 인간의 가능성이 있다.” <책 속의 한 줄>

사람이 절박해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눈이 먼다. 대학원생 시절의 내가 딱 그랬다. 포항을 벗어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는 모든 것이 다 논문을 내기 위한 데이터로만 보였다.

내 인생이 꽃도 한 번 제대로 못 피워보고, 그냥 시들어 버린 것 같을 때가 있다.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날 내 삶을 돌아보니 남는 것이 없다. 나는 우리가 아직 싹도 틔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어떠한 발견의 조각들을 찾는다. 그리고 그 조각을 최대한 합리적인 방식으로 조립해서 결과물을 만든다. 장비나 기술이 발전하면 전에는 보지 못하던 사실의 조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새롭게 찾은 조각을 들고 보니 과거의 조립물에 수정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연구의 과정이고 과학 또한 이렇게 발전해 왔다. 과학에 정답은 없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모든 연구의 결과는 연구자들이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장비나 기술을 최대한 사용해서 얻은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나의 인생’이라는 연구 주제를 받은 대학원생이 된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각기 다른 수준의 장비들로 다양한 경험을 하며 결과 데이터를 쌓아간다. 그렇게 얻은 결과의 조각들로 사람들은 각자의 논리와 가치관에 따라 인생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결과의 조각을 단어라고 생각하면 자서전을 써 내려가는 것과도 같다. 모든 결합에는 가장 안정적인 결합 거리가 있으며 그건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리였다. 아무튼, 1960년대에 나사는 엄청난 가속에 부서지는 우주비행사의 몸을 보호하고자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는 특수 소재를 개발했다. 그것이 지금에와서 침대나 베개, 심지어 구두 깔창에까지 들어가는 메모리폼이다. 우주선을 비롯해서 항공기나 전투기 비행사들은 어마어마한 소음에 시달렸다. 더 큰 문제는 임무를 안전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통신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했는데, 외부의 소음 때문에 이 또한 어려웠다. 비행사들의 청력을 보호하고 임무를 성곡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술이 필요했다.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그렇게 탄생했다. 나는 여전히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일에는 감흥이 없다. 제임스웹이 초고해상도의 사진을 찍어 보내와서 우주의 기원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고 한들 내 알 바도 아니다. 하지만 그 고결한 목표에 이르기 위해 쌓아 올린 계단의 벽돌 한 장, 한 장이 결국은 평범한 나의 일상에도 도움이 될 것임을 이제는 안다. 좌초되어 부서진 조각으로 표류할 줄 알았던 나의 연구가 다른 연구팀의 후속 연구로 이어져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을 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내 연구도 언젠가는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로 진화하는 날이 올까. 얼마가 될지 모를 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스스로 삶의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무의미한 집착으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로 삶을 끝낼 것인가.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다.

세상에는 하지도 않은 잘못으로 비난받고 욕먹는 그 시절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가 잘못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욕할 일인지 아닌지. 처지에 따라서 그런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부당한 상황에서 내가 나를 지켜내지 못하면 그 시절의 상처받은 내가 영원히 그 시간에 머무르게 된다. 잘못은 한 만큼만 혼나자. 포항공대 박사라고 하면 으레 똑똑하고 유능한 연구자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박사라고 다 같은 박사가 아니다. 나처럼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는 막장에 처박힌 그런 박사도 있다. 속에 흠이 많아 보석 구실을 못하는 에메랄드가 박사로서의 나랑 꼭 닮아 보였다. 논문의 가치는 임팩트 팩터라고 하는 점수로 매긴다. 나는 그 임팩트 팩터가 아주 낮은 저널에 학위 논문을 간신히, 아주 간신히 내고 졸업했다. 교과서를 바꾸는 발견을 한 내 사수나 우리 연구실 후배와 내가 같은 대학의 학위증명서를 받았다고 한들, 우린 절대 똑같은 박사가 아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일은 더 없는 보람이고 행복이었지만, 딱 그만큼 나는 불안했다. 내가 그 일을 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지적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나는 갑자기 뻔뻔해졌다. 티 한 점 없이 완벽한 돌만이 사랑받는 게 아니었다. 깨끗하고 투명해야만 가치를 쳐주는 보석 시장의 기준에서는 벗어났어도, 그 아름다움과 의미를 알아보는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보석이 된다. 박사 학위의 가치가 졸업 논문의 임팩트 팩터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낮은 임팩터 팩터 대신 다양한 불운과 고생을 겪었다. 그리고 그걸 견디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연구 외적인 부침이 없이 학위 과정을 마무리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찌질하고 가슴 아픈 상처들과 그것을 회복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 그게 박사로서의 내 가치고,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는 더욱 가치가 높은 덕목이기도 하다. 나는 시장에서 비싸게 팔리는 에메랄드는 아니겠지만, 어떤 수집가의 마음을 울리는 에메랄드는 될 수 있다. 보석도, 사람도, 흠이 있기에 더 매력적 일 수 있다. 나는 그걸 돌로부터 배웠다. 고작 거주지나 삶의 패턴에 따라 유전자의 발현 패턴마저 바뀌는데, 하물며 우리가 물려받은 것이 무엇이든 바꾸지 못할 게 뭘까. 돌연변이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 돌연변이의 결과다. 돌연변이는 기능의 획득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암세포가 되기도 한다. 네모반듯한 세상의 틀을 벗어나서 사는 것은 나의 자유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규칙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 인간은 매 순간 스스로를 의심하고 살펴야 한다. 몇 번의 시도로 단기간에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쯤 했는데 왜 안되냐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될 때까지 하염없이 하는 게 낫다. 머리에 지식을 채울수록 세상을 보는 눈은 되려 탁해진다. 무언가를 보고 마음으로 느끼기보다 머리로 먼저 분석하려 든다. 나 또한 광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기어이 그 원리를 알아내겠다고 용을 쓰지 않았던가. 어쩌면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지혜로워지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법을 잊어가는 건 아닐까. 바로 이럴 때, 대자연은 우리에게 그 알량한 지식을 뛰어넘는 감동으로 정신을 차리게끔 한다. 나무는 이파리를 모두 잃는다. 그래야 죽지 않고 겨울을 견딜 수 있다. 봄이 오면 다시 잎눈을 틔운다. 여름이면 다시 잎은 무성해진다. 어떤 상실은 더 풍성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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