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러 밀러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논픽션 에세이
제목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인데 진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작가가 주목한 사람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어류학자였다. 그는 물고기를 분류했고, 많은 물고기들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의 열정은 지진으로 자신의 모든 표본이 손상을 입었을 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열정 넘치는 과학자였지만 비난받을 점도 많았다. 그는 우생학을 신봉했고 (부적합한 사람들을 거세하자고 말하는 것에 큰 힘을 보태었다.) 제인 스탠포드 (남편 릴랜드 스탠포드와 함께 스탠포드 대학의 공동 설립자)를 독살하고 살인을 은폐하기도 했다. -그 외 나쁜 일 많음.- 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물고기 발견계의 거두로서 흠없이 유지되었다. 그러다 1980년대 “물고기는 당연히 존재한다”는 믿음을 지닌 채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던 분기학자들 (cladists)은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분류학의 기술을 실행하고, 다윈의 충고대로 진화상의 친연성에 따라 생물을 분류한 그 과정) -분기학자들은 인간의 직관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모든 생물이 진화의 나무에서 정확히 어느 가지에 속하는지를 밝혀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타당한 하나의 진화적 집단은 특정한 한 조상의 모든 자손을 포함해야 하며, 다른 것은 하나도 포함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생물을 분류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공통의 진화적 참신함”이라고 부른 특징들을 가지고 분류했다. 모델에 추가된 참신한 업그레이드를 알아내고 그 새로운 특징을 따라 생물들이 거쳐 간 다양한 버전들을 추적하며 누가 누구와 더 가까운지 알아냈다. (ex. 소, 폐어, 연어 중 폐어와 소는 둘 다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폐와 유사한 기관이 있음. 그리고 폐어의 심장은 소의 심장과 구조가 더 비슷함. 결론은 폐어는 연어보다 소와 더 가까움) 그리고 마침내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들 중 다수가 자기들끼리보다는 포유류와 더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도 알았다. “어류”라는 범주가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 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당대의 믿음들에 만족한다면 계속해서 발전이 가로막히고 좌절되고 병든 상태로 남을 거라고 걱정했다.
인간은 자기가 속한 유형 중 가장 낮은 위치까지 가라앉을 수도 있고, 영적인 높이로 올라갈 수도 있다.
어류는 인간이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 어디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비늘 덮인 존재였다.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
그는 자연의 사다리 형태, 그러니까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지위가 정해져 있는지를 드러내줄 가장 높은 청사진에 대한 추적을 계속 이어갔다.
자신이 하려는 일, 그러니까 혼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질서를 만들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았다.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이 사상은 정의, 향수, 무한, 사랑, 죄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이 천상의 에테르적 차원에 머물면서 인간이 발견해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가 그것들의 이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본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우리는 전쟁, 휴전, 파산, 사랑, 순수, 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사상에 따르면, 이름이 존재하기 전까지 개념들은 대체로 불활성 상태에 있다고 한다.
독수리 한 마리가 날쌔게 날아 내려와 파란 꼬리 스킹크 꼬리를 잘라 먹는다. 상처 입은 스킹크는 복수를 위해 독수리의 둥지로 종종걸음으로 올라가 독수리 알을 여러 개 집어삼키고는 ‘이 알들에는 새 꼬리를 만들기에 딱 충분한 만큼의 고기가 들어 있어’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둘의 행동은 계속된다. 독수리는 내려와 새로 난 꼬리를 잘라 먹고, 도마뱀은 둥지로 올라가 알들을 먹어 치우는 일이 계속된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완전히 패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꼬리에는 더 많은 알을 만들 고기가 충분하고, 알에는 또 하나의 파란 꼬리를 만들 고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 없이도 습득할 수 있으며, 정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말이다.
진실이 아니라는 걸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굳이 믿으려고 하는 것은 사회의 몰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하나의 신념으로까지 발전했다.
과학적 세계관이 골치 아픈 점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 세계관이 보여주는 것은 허망함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우리가 붙인 불은 숯을 남기고 죽는다. 우리가 지은 성들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사막의 모래만 남긴다.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 생명의 과정을 묘사하려면 기운 빠지게 하는 은유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그 모든 것의 허망함을 곱씹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몹쓸 짓은 이유는, 진화가 선물한 그 소중한 전기를, 너무나 많은 경이로운 감각들을 느끼고 너무나 많은 과학적 수수께끼를 푸는 데 써야 할 그 신성한 이온들을 실존적 탐구라는 하수구로 흘려보냄으로써 글자 그대로 “몸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죽은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계속 나아가도록 몰아대는 건 뭘까?
그릿 Grit’ 끈질긴 투지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지구의 수많은 생명들의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그토록 뚜렷이 경고한 이유는 “어느 무리가 승리하게 될지 인간은 결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메커니즘이 우리 내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가 자연을 분류하는 방법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믿음 체계를 획득할 수 있는 성향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가 자연 위에 그은 선들 너머에 또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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